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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도심속 한옥마을

 

경기헤드뉴스 임수연 기자 |

 

북촌은 조선시대에 조성된 양반층 주거지로서 1920년대까지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는데, 1930년대에 서울의 행정구역이 확장되고, 도시구조도 근대적으로 변형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주택경영회사들이 북촌의 대형 필지와 임야를 매입하여, 그 자리에 중소 규모의 한옥들을 집단적으로 건설하였는데, 현재 한옥들이 밀집되어있는 가회동 11번지와 31번지, 삼청동 35번지, 계동 135번지의 한옥주거지들이 모두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대청에 유리문을 달고, 처마에 잇대어 함석 챙을 다는 등, 새로운 재료를 사용한 북촌의 한옥은 전통적인 한옥이 갖고 있는 유형적 성격을 잃지 않으면서, 근대적인 도시조직에 적응하여 새로운 도시주택유형 으로 진화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북촌의 한옥은 한옥을 대량으로 지어야 하기 때문에 목재소에서 공급되는 표준화된 목재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였으며, 전체적으로 전통한옥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새로운 조건에 적응하며 새로운 도시 주택유형으로 정착되었다.

 

북촌 한옥의 특징은 크게 '진화된 구법'과 '장식화 경향'이라는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낮은 지붕물매, 굴도리, 겹처마, 좁은 주간에 많은 칸수 등 전통한옥과 배교할 때 비록 온전히 품격을 갖추지 못했지만, 북촌한옥에는 한옥의 구성과 아름다움이 응축되어 있다.

 

당시의 한옥 분양광고에서 볼 수 있듯, 밀도와 익명성에 대한 도시주택으로서의 요구를 반영하며 북촌의 한옥은 당시의 새로운 도시주택유형으로 정착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경복궁 서측’은 북악산과 인왕산을 배경으로 경복궁과 사직단의 사이에 입지하고 있다.
인왕산 기슭의 세심대와 필운대, 물길 따라 전개되는 청풍계와 백운동은 예로부터 도성 내의 명승이었다. 그리고 이 지역은 조선 건국 이래 왕족과 권력층의 세거지였으며, 조선 후기에는 중인들의 풍류와 문예가 꽃 피던 위항문학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는 총독부 관사와 벽수산장과 같은 친일세력가들의 저택이 들어서는 등 여러 층위의 역사가 중첩되어 있는 지역이다.

 

 

최근 전통문화 공연 및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시민들의 문화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는 운현궁은 조선의 26대 임금인 고종의 잠저(潛邸)로서 부친인 흥선대원군과 실제로 생활하던 공간이다. 흥선대원군은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10여 년간 이곳에서 나라의 주요 정책들 논의했다.

 

 

본래의 운현궁은 창덕궁과도 이어져 있을 만큼 큰 규모를 자랑했지만 한국전쟁 이후 규모가 크게 줄었다. 현재는 고종과 명성황후가 가례식을 올린 노락당(老樂堂)과 흥선대원군이 거처한 노안당(老安堂) 등 일부만이 남아 있으며 1년에 두 차례 가례의식을 재현하고 있다. 또한 문화교실 운영하며 상설 전시 및 강좌로 보다 친근하게 시민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돈화문로는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기점으로 청계천3가를 지나 필동 82-1번지까지 이르는 1.85km의 도로이다. 한양의 중심에서 남쪽으로 뻗어 나간 돈화문로는 주작대로(朱雀大路) 역할을 하던 중요한 길이었다.

 

 

성북동 앵두마을과 선잠단지는 서울 사대문 밖에서 처음으로 지정된 한옥밀집지역 중의 하나이다. 앵두마을은 성북동1가 105-11 일대를 말하며, 선잠단지는 성북동 62번지 일대를 말한다.

 

 

자료: 서울한옥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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