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헤드뉴스 최보영 기자 | 판교라는 도시는 늘 바쁘게 흐른다. 점심은 효율과 속도를 최우선으로, 저녁은 모임과 약속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 빠른 리듬 속에서도 시간을 온전히 고기에 쏟아내며 미식을 완성해내는 집이 있다. 디테라스 지하에 자리한 데이빗앤룰스는 그 이름처럼 규율과 원칙을 고기에 적용하며, 숙성과 불이 빚어낸 결과물을 내놓는다.
숙성과 조리의 규율
이 집의 핵심은 고기가 아니라 시간을 대하는 태도다. 독일산 드라이에이저에서 2주 이상 숙성된 1+~1++ 한우는 주물팬 위에서 시어링으로 단단히 잠기고, 다시 1,600℉의 브로일러 열기를 거치며 겉과 속의 대비를 완성한다. 채끝 등심을 주문하면, 주방으로 보내기 전 숙성고에서 꺼낸 원육을 직접 테이블 앞에서 보여주는데, 이 연출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신뢰의 과정이다. 손님은 눈으로 고기를 확인한 뒤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시간을 함께 공유한다. 곧이어 뜨겁게 달군 접시 위로 스테이크가 놓이고,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숙성의 시간이 맛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맞는다.
세 가지 소스와 곁들이는 방식
완성된 스테이크 옆에는 세 가지 소스가 함께 나온다. 고소하면서도 톡 쏘는 홀그레인 머스터드, 기름진 풍미를 정리해주는 와사비, 그리고 매콤한 여운을 남기는 홀스래디쉬다. 각각의 소스는 고기의 결을 바꾸지 않고 본연의 맛을 따라가며, 입안에서 조금씩 다른 결의 경험을 만든다. 한 점은 머스터드의 담백함으로, 또 한 점은 와사비의 청량함으로, 그리고 마지막은 홀스래디쉬의 매콤함으로 즐기며 같은 고기를 세 가지 얼굴로 경험할 수 있다.
사이드 디시의 존재감
스테이크의 무게감을 덜어내는 사이드 메뉴 또한 이 집의 특징이다. 크림드 스피니치는 부드러운 질감과 고소한 풍미로 고기의 기름기를 잡아내며, 오븐에서 구워낸 채소는 불맛과 색감을 더한다. 특히 치즈가 듬뿍 얹힌 맥앤치즈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진득해 스테이크의 진한 풍미를 다시 감싸는 역할을 한다. 사이드는 단순한 곁들이가 아니라, 고기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장치다.
숙성고가 보여주는 풍경
홀 한쪽에 자리한 드라이에이징룸은 이 집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유리창 너머로 진열된 고기들은 표면의 색과 질감이 숙성의 시간을 말해주고, 작은 표식들이 붙은 채 손님을 기다린다. 단순히 보관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숙성과 규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전시장이자 데이빗앤룰스의 철학을 눈으로 확인하는 무대다.
판교에서 만나는 호텔식 스테이크
판교라는 오피스타운 중심에서 호텔식 스테이크 하우스를 만나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다. 런치에는 파스타나 리소토 중심의 코스 구성이 마련되어 있으며, 스테이크는 그램 단위로 추가해 나누어 먹는 방식이 가능하다. 점심에는 가볍게, 저녁에는 와인과 함께 진중하게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다. 와인 리스트 역시 나파와 보르도, 바롤로, 샤토뇌프 뒤 파프 등 세계 각지의 셀렉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코르키지 제도 또한 운영되어 모임에 유연하게 대응한다.
데이빗앤룰스에서 한 점의 고기를 씹는 일은 결국 시간을 맛보는 경험이다. 숙성의 시간, 굽기의 순간, 그리고 손님이 식탁에서 보내는 기억의 시간이 고스란히 겹쳐지면서 한 점의 풍미로 응축된다.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판교의 하루 속에서, 이 집의 스테이크는 오히려 시간을 늦추고 여유를 환기한다. 그 느림을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고기를 통해 시간을 맛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