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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 이장 때 처음 본 아빠의 모습

그 때는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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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헤드뉴스 성미연 기자 |

 

< 연재소설 - 제 3화 >

 

햇살이 직각으로 떨어지던 화창한 어느 봄날 할머니가 치맛자락을 태극기처럼 펄럭이며 퇴청마루에 앉아 약 먹고 큰 방에 누워 있던 나에게 말을 건넨다. 뭔가 좋은 일이 있으셨던가보다. 진하게 쌍커플 진 큰 눈을 부러 초승달을 만들어가며 얼굴엔 웃음기가 가시질 않는다.

 

“하이고야 오진거~ 인자 할미랑 할아씨 다리 뻗고 자긋따야”

 

“할매 왜? 뭐 좋은 일 있었능가?”

 

“이~ 박수무당집 가서 돈 겁나 주고 날 받아 왔당께. 하이고 느그 할아씨 전 재산의 절반을 톡 깨부수가꼬 염병났다고 일가친척 조상들까정 다 모신 담시롱 산에다 돈을 쳐발쳐발 해싸트만...그래도 명절 때 마다 이 산 저 산 인자 안 댕기고 한 쪽에 모닥그리 놓으믄 이 담에 느그들이 좋지야 머. 안 그냐~ 하이고오 오진거~”

 

선산이 없었던 우리 집안은 명절 때면 6대 조상까지 인사하러 이 산 저산 동서남북으로 해질 때 까지 헤집고 넘어 다녔는데 후손들에게는 그런 노고를 물려주기 싫으셨던지 선산용의 산을 샀다한다. 6대까지 조상들을 옮기고 비석도 다 세울 거라는데 할아버지 인생에서 가장 큰 업적을 남기실 모양이다.

 

그 날 이후, 일가친척의 모든 여인네들은 우리 집에 모여 노동으로나마 빚을 갚느라 몇 날 며칠을 음식 장만한다고 집안은 어수선했고 곳간의 열쇠를 거머쥐고 있던 할머니의 기세는 하늘의 저 뜨거운 햇살도 무색케 했다.

 

어느 한 날, 그 날이 D 데이 였던 모양이다. 큰 대문의 문살까지 아예 다 뜯어 한쪽으로 치워 놓고는 많은 남자들과 꽃상여가 마당에 있었다.

 

“어이 질녀 정지에 가믄이 부세 쪄논거 있응께 소쿠리에 담아서 얼릉 가지고 나오소”

 

“종백숙부헌티 준비 다 됐응께 언능 채비하라고 흐고이”

 

“하이고 신샌떡 에진간히 준임석 놀리고. 아 젯 상에 올라갈 것을 그라고 헤지비 놓브믄 쓰것는가”

 

“어이 재종수 통~아새끼들 땜시 걸거쳐 죽것응께 한 쪽으로 재종수가 모닥끄리해서 좀 보소이”

 

“찬들은 염녑히 담고 저 큰 창고 도가에서 막걸리도 넘치게 담고이~”

 

할머니만 혼자 눈과 입이 바빴고 친척들 아이들과 구경 온 동네 아이들은 전이며 떡 쪼가리를 입에 물고 서로 뺏어 먹겠다고 전쟁놀이를 해댔으니 아무리 마당 큰 집 이라 해도 우리집 마당이 그 날은 처음으로 작게 느껴졌다.

 

시끄러운 통에 머리는 더 아팠고 기침도 더 나왔다. 항상 왼 손에 들려있는 하얀 가제 손수건에 핏방울이 몇 방울 튄 모양이다. 빨간 땡땡이 무늬가 불규칙하게 그려져 있었다.

‘ㄱ’자 모양의 큰 기와집에 큰 방을 제외한 나머지 방들의 사이즈가 다 똑 같았으므로 작은방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이제는 함께 살지 않는 삼촌들과 고모들이 사용했었던 커다란 책상 세 개와 책장 세 개가 들어 앉아 있는 그 큰 방에 혼자 유배자처럼 숨어 나는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깜빡 잠든 나를 큰삼촌이 깨우며 이번에 만든 양갱과 한약을 쟁반에 들고 들어와서는 어거지로 입 벌려 약을 털어 놓고 양갱 조각을 물려 주면서 후딱 채비하란다. 아빠 보러 가자고....

 

이상하게 할아버지는 한국 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들한테 학교 운동장에서 죽창으로 공개처형 당했다던 당신의 부모님을 먼저 모시는 것도, 돌아가신 집안 어르신들을 먼저 모시는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가슴에 대못 박은 몹쓸 자식을 제일 먼저 이장한다고 했을 때, 언감생신 아무도 입을 못 떼었다고 나중에 내가 어른이 다 되어 들었다.

 

“허기사 돈 낸 사람 맴이지 머~”

 

“아따 암만 오야 맴이라 해도 글치 선산에다가 아 어찌 자식을 맨 먼저 이장을 흔당가~”

 

“글씨...당숙 맴이지 머~”

 

“어이 어이 누가 들으믄 으짤라고 다들 입 닫으소이~”

 

마당을 가로 질러 큰 대문 옆에 있는 화장실 가는 길에 우물가에 앉아 상추 씻던 종숙모와 부엌과 우물가 중간쯤에서 전 지지던 재종숙모들의 이야기를 안 듣는 척 하며 다 들어버렸다. 이장하는 것도 순서가 있다는 걸 그 때 알았다.

 

산으로 떠나기 전 한 차례 집에서 술과 안주를 거하게 먹은 하얀 광목으로 깔 맞춤 옷을 입은 아저씨들이 꽃상여를 메고 대문을 나섰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윗동네 아랫동네 아이들까지 다 모여 히히죽 거리며 꽃상여 뒤꽁무니를 따랐다.

 

무슨 연유인지 물어보지 않아 지금까지도 이유를 모르지만 그 날은 집에 오빠들이 아무도 없었다. 아니 둘째 오빠는 있었는데 “무덤 파는거 흐미~~ 무서버...”하며 내뺐던 것 같다. 큰오빠도 셋째 오빠도 없어 자식으로는 유일하게 낼 모레 죽을 날 받아 놓은 폐병 걸린 째깐한 가시내 나 혼자 큰 삼촌 등에 업혀 그렇게 아빠를 만나러 산엘 갔다. 들판 지천에 자운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민들레 꽃가루가 나폴나폴 눈처럼 날리던 눈이 시리게 어여쁜 늦은 봄이었다.

 

산 중턱에서 한 번 더 새참 먹으며 쉬었다 올라가는데 그 맑던 하늘이 갑자기 캄캄해지더니 거짓말처럼 비를 한 차례 쏟아 내는데 지나가는 소나기 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눈앞에 언젠가 어디에선가 보았던 그런 광경이 펼쳐졌다.

 

마치 휴거의 한 장면 같은... 구름 사이로 햇살이 조명탄 같은 빛줄기로 쫘아아악~변해 내리 꽂는데 눈을 뜨지 못하게 했다.

 

서산 공동묘지에 도착하여 제를 먼저 지내고 큰 삼촌이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불을 붙이면서

“행님. 행님이 젤루 다 좋아 흐는 담배 한대 묵으시고 넓고 좋은디로 옮겨 드릴랑께 잠깐 바깥 공기 한 번 맡으소. 요번에 아부지가 애 많이 썼그만. 아 글고 연이 델꼬 왔네이. 많이 컸지라이. 그렇게 물고 빨고 이삐해싸트만....암만 이뻐도 야는 델꼬 가시 마소. 행님. 에이~ 씨팔...”

 

정 많고 눈물 많은 큰 삼촌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니 옆에서 인부아저씨들이 “아, 저리 비키쇼. 날 저물것네”눈물 흘리는 큰삼촌이 무안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끊어 놓는다.

 

곡괭이와 삽으로 봉긋한 무덤을 깨부시기 시작하는데 전설의 고향에서 본 것처럼 무덤을 파헤치면 하얀 소복을 입은 아빠가 좀비처럼 비적거리며 나올 것 같아 나는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다. 긴장해서 얼굴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따 우리 애기씨는 간댕이가 상당흐그만이. 안 무서분가 몰라?”

 

“어이 박샌 애기씨 놀리지 마소. 안 그래도 긴장했는가 얼굴이 시뻘겋네야”

 

“우리 애기씨는 아빠 기억 흘랑가 몰라이~”

 

“아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리 찍찍 해싸. 애기씨 돐 잔치 흐고 쪼매 있다 바로 그리 됐응께 하메 모르지이~ 암만 모르지 으찌 알긋써”

 

“차암 사람 모를 일 이제. 인물 좋고 그렇게 많이 배운 사람이 아 어째 큰 병도 아니고 고까짓 감기로 갑자기 사람이 그렇게 된당가이”

 

“그랑께 성영감님은 오죽했것능가”

 

“아 이승에서 잘난 사람은 저승에서도 시킬 일이 많아 빨리 데려 간다 안흡디까”

 

“아따야 땅 파기 좋으라고 아까 비를 그렇게 살짝 뿌렸는 갑네이~”

 

“긍께 말이시”

 

광목아저씨들이 주거니 받거니 말을 건네며 얼마나 땅을 팠을까.

 

“어이 어이 나오네 조심흐소이. 인자 곡괭이 내려놓고 호미로 살살 긁어 보드라고”

 

“어따 저 냥반 먼 술을 저라고 드실까이. 아, 잘못해서 막 뼈 아무캐나 맞추고 그러는거 아니것지으. 아이 장의사 저 냥반 얼렁 오라 그래라이. 느그들은 관 들고 와서 이 짝에다가 놓고. 아 싸게싸게 움직여~”

 

시커멓게 썩은 나무판자 조각들이 듬성듬성 보이기 시작하자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썩은 나무판자들을 걷어 내고 솔로 살살 문지르니 점점 형태가 드러나는데 잉? 다 썩었는데 죽어서도 멋을 한껏 부린 아빠는 나일론의 노란셔츠를 입고 있었다. 해골의 모습으로...

 

큰삼촌이 말하길 “살아생전 행님이 젤루 좋아 했었던 옷이라 입혀 드렸다고 흡디다”

 

‘노란셔츠의 사나이’란 곡이 1961년 발표되어 대히트를 쳤었다지만 컬러플한 셔츠가 없었던 당시에는 노란셔츠의 그 유행이 십년을 갔을까?

 

아빠가 돌아가실 당시 1971년에도‘노란셔츠의 사나이’란 곡은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었었던 모양이다. 유행이라면 선두의 길을 걸었다 하더니 죽어서도 자식에게 아빠의 센스를 보여주는 것 같아 배시시 웃음이 나오며 해골의 아빠 모습이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가부장적이고 봉건적이고 유교사상이 뼈 속까지 깊은 할아버지의 사상에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그 엄격한 장례문화에 상복으로 나일론의 노란셔츠를 죽은 아들의 몸에 입혀 주다니...그런 건가보다. 부모란 자식 앞에 뭐든지 해줄 수 있고 무너질 수 있고 버릴 수 있다는 거...

 

아홉 살인 내가 아빠의 유골을 받아 빳빳한 화선지가 깔린 관 속에 장의사가 가르켜 준대로 넣는데 사람 몸에 뼈 조각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과학실에서 봤었던 해골처럼 하얗치는 않아도 노르스름하게 익은 것이 묏 자리가 좋았었던 모양이라고 술 냄새 팍팍 풍기며 딸기코 장의사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아빠가 끼었던 반지, 시계, 금목걸이, 노잣돈으로 넣었던 동전들 그리고 그렇게 좋아하셨다던 노란셔츠까지 입관할 때 다시 넣어 드렸다. 하나라도 빼 먹으면 ‘전설의 고향’에서처럼 꿈속에 나타나 “내 것 내 놔라”할까봐...

 

그런데 지금은 후회스럽다. 뭐라도 하나 빼서 가지고 있었으면 “내 것 내 놔라”하며 꿈 속 에서라도 아빠 얼굴을 한 번 더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쉽기만 하다...

 

 

글 : 성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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