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동두천 15.5℃
  • 구름조금강릉 20.9℃
  • 구름많음서울 17.5℃
  • 구름많음대전 16.8℃
  • 박무대구 14.6℃
  • 맑음울산 17.4℃
  • 광주 14.0℃
  • 맑음부산 18.9℃
  • 흐림고창 15.0℃
  • 맑음제주 22.5℃
  • 흐림강화 16.0℃
  • 구름많음보은 13.8℃
  • 흐림금산 14.3℃
  • 흐림강진군 13.8℃
  • 맑음경주시 16.2℃
  • 맑음거제 18.8℃
기상청 제공

로베르토 클레멘테데이 맞아 선수단 전원 등번호 21번으로 그를 기념하다

 

 

 

1972년 12월31일 38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로베르토 클레멘테를 기념하는 ‘로베르토 클레멘테 데이’다. 올해로 메이저리그가 선정한 로베르토 클레멘테 데이 19주년이다.

 

 

'ESPN'은 14일 밤(한국시간) 하루 뒤 열린 로베르토 클레멘테데이에서 클레멘테가 몸담았던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선수단 전원이 등번호 21번을 달고 경기를 치뤘다고 전했다.

 

 

 

로베르토 클레멘테 워커(Roberto Clemente Walker, 1934년 8월 18일~1972년 12월 31일)는 메이저 리그 피츠버그 파이러츠에서 활약했던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우익수로 메이저 리그 최초의 라티노 선수이다. 1955년 피츠버그 파이리츠 소속으로 데뷔한 이후 1972년까지 18년 동안 팀의 중심타자로서 맹활약 하였다. 통산 12번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골든글러브에도 12차례 선정되었고, 1966년에는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하였다. 또한, 1960년과 1971년에는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일조하기도 했다.

 

평소 빈곤한 푸에르토리코와 중앙아메리카의 아이들을 위해 야구장비나 식량을 기부하는 등 많은 자선활동을 해온 것으로도 유명했던 그는 1972년 12월 31일, 대지진이 일어난 니카라과에 구호활동을 하기 위해 탑승했던 비행기가 추락하여 사망한다. 당시 그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의 공적을 기려 이듬해인 1973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데, 이는 은퇴한 지 5년이 지나야 명예의 전당 입당 자격이 생기는 기존의 관행을 깨뜨린 것이다.

 

 

이후 메이저 리그사무국에서는 '사회에 가장 헌신적인 공헌을 한 선수'에게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수여하고, 그를 기리고 있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9월 10일(이하 한국시간) SNS를 통해 추신수가 로베르토 클레멘테 데이에 상패를 받았다고 전했다. 추신수는 크리스 우드워드 감독에게 트로피를 받고 기념 촬영을 했다.

 

 

클레멘테는 1934년 푸에르토리코에서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렸을적부터 육상 단거리와 창던지기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클레멘테의 진짜 꿈은 야구선수였다. 어린시절,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강견 우익수 '칼 푸릴로'를 가장 좋아했던 클레멘테는 매일 몇 시간씩 벽에 고무 공을 던지며 어깨를 단련했고, 이는 훗날 메이저 리그 역대 최고의 송구를 자랑하는 외야수가 되는 밑바탕이 된다.

 

푸에르토리코 프로 팀에서 뛰고 있던 18살의 클레멘테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다저스 구단의 스카우트 '알 캄파니스'였다. 당시 다저스는 라틴 아메리카 시장 개척에 나선 팀들 중 맨 앞에 있었다. 다저스보다 한발 늦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3만달러라는 당시 거액의 금액을 제시하여 입단 보너스까지 제시했지만, 클레멘테는 자신을 먼저 발견한 다저스 구단과 1만달러 계약을 택했다.

 

1955년에 다저스에서 파이어리츠로 트레이드​ 입단한 클레멘테는 당시 20살의 나이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곧바로 메이저 리그로 승격하여 기회를 잡아 데뷔하였는데, 이는 '히스패닉 라티노계'인종으로서 최초의 메이저리거 데뷔였다.

 

1972년 클레멘테는 정확히 3000번째 안타를 때려내고 시즌을 끝냈다. 당시 38살의 나이였지만, 꾸준한 기량을 보여왔고 12번째 올스타전에 출전했으며 12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노쇠화의 징후는 전혀 없이 꾸준했다.

 

1972년 시즌 끝나고 난 뒤인 12월 23일, 니카라과 마나구아 지역에 큰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었다. 평소에도 사회봉사에 매우 헌신적이었던 클레멘테는 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도와주고자 헌신했다. 하지만, 클레멘테가 보낸 구호품은 2번 모두 니카라과 이재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푸에르토리코 군대가 중간에서 부정착복하고 가로챘기 때문이었다.

 

12월 31일, 클레멘테는 3번째 구호품과 함께 직접 비행기에 올랐다. 낡은 DC-7 수송기에는 구호품이 2톤 넘게 실려 있었다.

이륙 후 얼마 되지 않아 엔진에서 갑자기 화염이 일어났다. 그리고 수송기는 바다로 추락했다. 수송기에 탑승한 5명 중 조종사의 시신만 발견되었고 클레멘테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사고 원인은 과도한 화물 적재, 엔진 결함, 그리고 악천후였고 그렇게 클레멘테는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 당시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의 고향 푸에르토리코사람들은 물론 중남미국가들 사람들 역시 평소'영웅'같은 존재로 여겼던 클레멘테의 죽음에 커다란 충격과 슬픔을 보였다.

 

출처 : ESPN, 위키백과 일부 발췌

 

 

 

 

 

많이 본 기사

더보기

BEST 영상뉴스